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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이 ‘아사셀’ 염소?

기사승인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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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 전 시애틀 고문

양(sheep)과 염소(goat)는 다른 듯 닮았다. 털 색깔이 백과 흑으로 구별될 뿐 생김새도, 덩치도, 먹성도, 울음소리도 비슷하다. 양은 소나 말처럼 흔한 가축이지만 한국 토종은 아니다. 고려 때 금나라(중국)에서 처음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토종은 염소였다. 그래서 양띠를 염소띠라고도 부른다. 중국과 일본에선 염소를 산양(山羊)으로 표기한다.

양은 고대 유목민들의 필수 가축이었다. 털로 옷을 만들고 고기와 젖을 먹고 마시며 가죽으로 천막을 지어 의식주를 해결했다. 온순하고 잘 따르고 무리 짓는 습성이라 기르기 쉽지만 시력이 지독하게 나쁘고 방호능력이 빵점이어서 목자가 없으면 맹수에게 잡혀 먹히기 일쑤다. 성경의 양치기 소년 다윗은 사자를 쫓던 물맷돌 솜씨로 거인 적장 골리앗을 골로 보냈다.

염소는 양과 달리 독자행동을 좋아한다. 고집 세고 저돌적이다. 수틀리면 뿔로 주인을 들이받는다. 양 우리엔 염소를 몇 마리 넣어 함께 기른다. 양들이 염소를 왕따 시키기는커녕 리더처럼 의지하며 따라다닌다. 양을 선인, 염소를 악인에 비유하는 크리스천들이 있지만, 아니다. 성경의 예수 말씀(마25:31~46)은 선인과 악인이 양과 염소처럼 쉽게 구별된다는 뜻이다.

오히려 염소는 고대 유대인들이 제수용으로 쓴 성스런 동물이다. 대제사장이 연례 대속죄일에 수 염소 한 마리를 도살한 후 피를 여호와의 임재 자리인 언약궤 덮개 위에 뿌리고, 다른 한 마리엔 이스라엘 백성이 1년간 지은 죄를 그 머리에 씌운 후 ‘아사셀‘(Asasel)을 위해 광야로 내쫓는다. 아사셀은 사탄의 이름, 아니면 그가 사는 험준한 계곡의 지명이다.

아사셀 염소는 필경 벼랑에 떨어져 죽거나 맹수에 잡아먹힌다. 백성들은 자기들의 죄가 염소와 함께 없어졌다고 믿는다. 그렇게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죽는 아사셀 염소를 희생양(속죄양)이라고 불렀다. 기독교는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하나님의 희생양으로 섬긴다. 정확하게는 희생(속죄)염소이다. 영어로도 ‘scapesheep’이 아닌 ‘scapegoat’이다.

Scape는 죄, 재난, 역병 따위에서 ‘벗어난다(면한다)’는 뜻이다. 고대 유대인들이 죄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쓴 염소가 스케이프고트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수천년이 지난 요즘 미국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서 우리네 아시안들이 엉뚱하게 스케이프고트가 되고 있다. 중국 우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의 최초 발생지라며 동양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든다.

최근 미국의 각 주정부가 ‘집콕’ 봉쇄조치를 슬금슬금 풀자 한인들도 모처럼 바깥바람을 쐬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인다. 그러나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마스크를 쓰고 외출해도 코비드-19 폐렴보다 더 고약한 ‘풍토병’에 희생될 수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욕설을 듣거나 얻어맞을 수도 있다. 순전히 얼굴 모양새 때문이다. 신종 바이러스에 따른 신종 스케이프고트이다.

지난 20일 시애틀 도심에서 백인이 아시안 행인 커플을 다짜고짜 폭행했다. 그는 “이 모두(바이러스 사태)가 너희들 때문이야”라며 ‘퉤’하고 침을 뱉었다. 그에 앞서 역시 시애틀의 홈 디포 매장에서 중국계 고객이 백인에게서 “중국으로 돌아가라. 눈 좀 더 크게 뜨고”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폭력이 없으므로 범죄가 아니다”라는 말만 들었다.

아시안 왕따 세태의 바람잡이가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에겐 아사셀 염소가 절실히 필요하다. 연초 코로나바이러스에 “잘 대비하고 있다”고 흰소리 치고는 불과 석달만에 미국을 지구촌 최악의 전염국가로 만들었다. 코앞의 재선이 불안해지자 중국과 세계보건기구(WHO)를 아사셀 염소로 삼아 국민의 적개심을 진작시키면서 자신을 향한 지탄의 손가락질을 피하려든다.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막말을 퍼부을수록 일부 백인들이 부화뇌동하며 아시안 시민들을 더욱 구박할 터이다. 하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는 미국의 고질 풍토병이다. 1800년대의 중국인 배척법, 1940년대의 일본인 강제수용, 현재의 멕시코 국경장벽이 대표적 예다. 양과 염소가 탈 없이 잘 어울려 산다는 사실을 트럼프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미주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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