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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의 숙원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에 대한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법률』 국회 본회의 통과

기사승인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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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 발의자 이완영 의원 인터뷰

   
 

2020년 5월 20일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에 대한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법률」이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됐다(재석 165, 찬성 161, 기권 3). 지난 8개월여 동안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이 법률안의 제정을 촉구해온 (사)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는 57년 숙원을 이루는 길에 초석이 마련된 것으로 평가하고 사업 추진에 활기를 띠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해외교포문제연구소는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인식 아래 5월 22일 오후 이완영 의원을 연구소에 모시고 대담을 가졌다.

이구홍 이사장: 이완영 의원님은 우리 연구소에 처음 오신거죠. 이번 법안 제정은 우리 동포들의 숙원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연 것으로 평가됩니다. 법안 제정에 대표 발의를 맡아 앞장서서 노력하고 많은 공을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비록 우리 연구소가 조촐하기는 하지만, 1963년 한일회담 실무회의가 시작될 때부터 재일동포의 법적지위 문제를 처음 제기하고 그 어떤 보상 문제보다도 가장 중시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하면서 민관을 막론하고 두루 인정을 받아 출범한 단체이고, 지금까지 해외동포들의 지위향상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 중단 없이 활동해온 전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법안 제정을 발의하게 된 계기와 그간의 경과를 말씀해주시죠.

이완영 의원: 국회의원으로서 발의한 법안이 본회의에 통과된 것도 기쁘거니와 각계의 환영 인사를 받고 또 이렇게 해외교포문제연구소에서 초청해 주셔서 무척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 8여년 동안의 의정활동 중에서 가장 뜻 깊고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법을 통과하기까지 저와 함께 발로 뛴 이우연 연합회장을 비롯한 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 임원들의 노고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기억으로는 2017년 6월경에 파독연합회 이우연 회장과 임원들이 국회 제 방에서 대면을 가졌습니다. 연합회는 ‘그동안 「파독 광부·간호사에 대한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의 제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태 법 제정까지 이르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의원님이 맡아 발의해주면 좋겠다.’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실제로 이 법안은 2015년 2월 공청회도 열렸고 많은 반향을 일으키면서 발의되기도 했지만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 등으로 19대 국회에서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습니다. 저는 그때 연합회 임원들의 얘기를 듣고 바로 직감적인 느낌이 왔습니다. 그래서 “왜 진작 저한테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19대 같았으면 더 빨리 해결했을 텐데. 이번에 제가 통과시켜 보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고 반갑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노동부 공무원과 국회의원을 하면서 고생하신 파독 선배님들에게 한 것이 없다는 것에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들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제가 아는 상식으로 우리나라 경제 부흥이 파독 광부로부터 시작됐다고 공부하여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60년대 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6.25전쟁의 참화를 벗어나 경제를 재건하는데 차관 하나 빌릴 데가 없었습니다. 마침 2차대전 이후 우리와 분단이라는 비슷한 처지에 있던 독일이 광부, 간호사 등 힘든 업종의 인력이 부족한 상태였고 이러한 인력의 송출을 매개로 우리는 필요한 차관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64년 12월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뤼브케 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총리의 영접을 받고 아우토반을 둘러보았으며, 그때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철강산업을 육성하라는 에르하르트의 총리의 조언이 그대로 실현되지 않았겠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은 루르지방의 함보른 탄광회사를 찾아 한국의 광부들 300여 명과 각지에서 온 간호사 50여 명과 대면을 하였는데 애국가가 시작되자마자 눈물과 흐느낌으로 강당이 다 메워졌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이 잘나지 못해서 여러분들이 이토록 고생하고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본인은 여러분들의 고생과 고난이 절대로 헛되지 않게 반드시 가난을 극복하고 경제발전을 이룩하겠다. 그때까지 꿋꿋이 참고 열심히 일해 달라”고 박정희 대통령이 함께 울먹이면서 한 말은 지금까지 파독 동포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파독 근로자에 관한 법안은 노동부의 소관인데다가 제 자신이 노동부 출신으로서 오랜 근무 경력이 있었고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협회가 추진해온 경과와 내역을 모으고 다듬어서 2017년 11월 24일 「파독 광부·간호사에 대한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으로 정식 발의하였고, 2년 6개월만인 2020년 5월 20일 통과된 것입니다.

   
▲ 2014년 2월, 이완영 의원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질의하고 있다. 사진제공 이완영 의원.

이 이사장: 1960년대 대한민국 하면 떠오르는 말이 ‘가난’이라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현재의 우리는 이를 극복하고 오늘이 있기까지 그 역사를 이루어낸 선대 분들의 피눈물로 얼룩진 땀과 노력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국내 국외가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고국을 떠난 사람들은 고국산천에 대한 그리움과 한이 더욱 사무쳤을 것입니다. 이들을 예우하고 지원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돌비석을 세우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봅니다. 우선 통과된 법안의 주요 내용부터 설명해 주실까요.

이완영 의원: 먼저 이 법의 목적은 “대한민국 정부 및 독일연방공화국 정부간 이루어진 경제 및 기술협조 등의 일환으로 독일에 진출하여 근로한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노고와 희생을 기념하고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이들의 공로에 걸맞는 기념사업 및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입니다(제1조).
이에 따라 지원대상자는 1961년 체결된 ‘대한민국 정부와 독일연방공화국간의 경제 및 기술원조에 관한 의정서’, 1963년 체결된 ‘한국 광부의 임시 고용계획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63년 12월 21일부터 1977년 12월 31일까지 독일에 진출한 광부와 1966년 1월 29일부터 한국해외개발공사를 통한 알선과 1969년 체결된 ‘한국해외개발공사와 독일 병원협회 간 협정’에 따라 1976년 12월 31일까지 독일에 진출한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입니다(제2조).

공식 통계로 파견 근로자는 광부 7,936명,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11,057명으로 총 18,993명이지만, 현재에는 이분들 중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도 꽤 있고, 대략 30%정도 귀국한 걸로 추산되며, 30%정도는 독일에 정착하였고 나머지는 다른 유럽국이나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로 재이민하여 세계 도처에서 가정을 이루고 독특한 우리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며 살고 계십니다. (사)한국파독광부간호사조무사연합회는 이들을 통틀어 2~3세대까지 포함하여 세계 25만 명의 염원을 담아 법제정을 각계에 호소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이 법은 개인별 지원을 넘어서 이미 재외동포 정책과 관련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법령에 따라서 국가는 대한민국 또는 거주국에서 생활에 필요한 기본 정보를 제공하거나 대한민국 정착에 필요한 교육과 상담 등의 지원을 할 수 있으며(제3조), 기념사업, 역사자료의 수집, 보존, 관리, 전시 및 조사 연구 그리고 기타 학술활동 등의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4조).

   
▲ 2014년 6월 20일 이완영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대정부 질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이완영 의원.

다만, 제가 최초 법안 발의 내용에는 이들에 대한 예우를 국가의 의무 조항으로 규정하고 기본적인 의료지원과 생활지원금을 지원하려 했으나 국회와 정부 간 심의 과정에서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빼고 파독 근로자의 정신을 살리는 기념사업 등을 우선 할 수 있도록 수정하여 통과된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워낙에 법안 제정이란 과정 자체가 힘든 일이기 때문에 그러한 미비점은 추후 보완할 과제로 남겨두고 우선은 제정의 문턱을 넘어서는 ‘파독’이란 법이 만들어 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협회 임원들도 이 점을 수긍하고 앞으로 전개할 사업을 더욱 알차고 내실 있게 다져 나가기 위해 힘을 쏟기로 하였습니다.

이 이사장: 법안 제정에는 얼마나 어려운 과정이 따르는지 저도 잘 압니다. 이 의원님, 헌법 제2조 ②항의 ‘재외국민 조항’ 아시죠. -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이 조항은 1980년 10월 개정된 헌법에서부터 명시되었는데, 이걸 제가, 우리 해외교포문제연구소가 주도하에 넣었는데 참 무척 힘들었습니다.

아무튼 이번 법 제정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고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완영 의원: 아닌 게 아니라 법안의 심의가 여러 가지 이유로 자꾸 늦어지는 겁니다. 민주당과도 이견이 있었고, 정부 실무부처와도 논란이 많았습니다.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외국에 나간 근로자가 많은데 왜 특별히 파독 광부, 간호사만 지원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요컨대 법 제정의 당위성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 그리고 그에 따르는 예산 배정 문제였습니다.

제가 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주장한 내용은 주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분들은 국가적 필요성에 따라 모집, 교육, 파견에 이르기까지 정부 주도로 해외에 나간 근로자이고, 사우디 근로자처럼 민간기업이 주도해서 해외에 나간 분들과는 차원이 매우 다르다.” 또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KOREA라는 나라를 잘 몰랐던 시기에 이분들은 말도 잘 통하지 않은 여건에서 지하 갱도와 병원에서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책임을 완수하는 성실과 근면성을 독일 정부도 공식적으로 인정할 정도로 국위선양에 기여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분들도 노인이 다 됐다. 파견 근로자의 기본 계약기간은 3년이지만, 개인 사정이나 특히 고국의 형편이 여의치 못하다 보니 바로 귀국을 하지 못하고 계약을 연장하여 보통 10여 년이 넘게 근무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삶의 역경 속에서 현지인과 가정을 꾸리고 독일 사람이 된 분들도 있고, 다른 유럽국이나, 미국, 캐나다, 호주 등으로 재이민 간 분들도 많다. 그 중에는 한국에 돌아오고 싶은 사람도 꽤 많지만 노인으로서 생활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오도가도 못 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의료와 생활 지원이 절실한 것이다.”

제가 이 정도라도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사회적 공감대라는 저변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분들의 호소를 받아들여 조사보고서를 채택하였는데, “독일 파견 근로는 해외 인력수출을 통한 국내 실업률 감소, 기술 습득 및 외화 습득을 통한 경제개발 투자자금 확보, 서독과의 정치외교적 우호 관계 증진 등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공식 확인하였습니다.
또 2013년은 한·독 수교 130주년, 파독 5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재독동포사회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표명하고, 재독동포사회의 단합과 발전을 독려하기 위해 재외동포재단을 통해 파독광부 단체인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에 101,906유로(한화 약 1억 4천 4백만 원)를 지원하여 독일 에센(Essen)시에 있는 파독광부 기념회관의 부채를 상환토록 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25억 원의 특별예산을 편성하여 2013년 5월 17일 서울 양재동에 빌라 1동을 구입하여 ‘한국파독광부간호사기념관’을 설립하였고, 지금까지 (사)한국파독광부간호사조무사연합회(2008년 10월 설립)에 무상 임대하여 관리토록 하고 있습니다.

2014년 12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를 모시는 감사 송년회’에서 파독 광부, 간호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는 정부가 대통령의 이름으로 최초로 밝힌 공식 의사 표현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 편지에서 “조국의 번영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이역만리 낯선 독일 땅으로 떠나신 지 올해로 51주년을 맞이하게 됐다”며 “여러분의 헌신적인 모습과 신뢰를 토대로 한국과 독일은 지금까지도 각별한 우정과 신뢰를 쌓아오고 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은 여러분께 큰 빚을 지고 있다”며 “여러분의 헌신과 열정, 조국과 가족에 대한 기여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국민 모두의 마음을 모아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언급하며 “1달러의 외화가 아쉬웠던 시절, 이역만리 낯선 땅 독일에서 조국 근대화의 역군이 되어준 분들이 계셨습니다. 뜨거운 막장에서 탄가루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석탄을 캔 파독광부, 병원의 온갖 궂은일까지 견뎌낸 파독간호사, 그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조국경제에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중략) 이제는 노인이 되어 가난했던 조국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그 분들께 저는 오늘,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의 훈장을 달아드립니다.”라고 그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여기 오기까지 예를 들면 ‘독일 아리랑, 45년에 묻다’, ‘국제시장’ 등을 비롯한 기념전과 행사, 각종 다큐멘터리와 영화, 그리고 그림과 전시물, 시와 소설 등 수많은 기록들이 역사와 사실을 전하고 형상화하여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었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하루아침에 어떤 한마디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독일에 근로자 파견과 차관도입의 실무를 맡았고 그간의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주신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으로 계시는 백영훈 박사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백영훈 박사님의 지론은 “파독근로자가 대한민국 사람(KOREAN)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고, 이 분들 덕택으로 독일로부터 차관을 빌려올 수 있었기에 가난을 이겨냈고 산업화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 5월 28일 이완영 의원이 파독근로자기념관에서 이우연 연합회장(왼쪽에서 두번째), 백영훈 박사(왼쪽에서 세번째) 등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이완영 의원.

5월 28일 오전에 이우연 회장과 함께 백영훈 박사에게 법 통과를 보고하고 설명을 드리니 “91세 평생에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해주어 고맙다”라고 하시고, 앞으로 착실한 후속 작업을 위해 최선을 다 해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러한 여러 정황과 노력에 힘입어 법안이 탄생하기에 이르렀고, 좀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파독광부 기념회관 등 그동안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생활지원, 의료지원을 넣는 데는 현재 예산상으로 좀 과하다. 이것은 좀 더 지켜보자. 일단 법은 통과시키되 기념사업 지원의 근거를 확실히 넣고 파독관련 법안이 최초로 성립되었다는 데 의미를 두자” 하는 의견을 모아 법안 제정이라는 첫 관문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 이사장: 제가 2006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인데 재독한인회 회장의 제안을 받아 함께 영월 탄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파견 광부로 선발된 후 처음 교육과 훈련을 받던 곳이었습니다만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폐광이 되어 관광지로라도 개발되길 기다리는 곳이 되어 있었습니다. 고국이라고 또 고향이라고 돌아와 봐도 수십 년이지나 옛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세월이 흘러 가족마저도 만날 수 있는 분이 없으니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남긴 자취에다 기념관이라도 짓고 싶은 것이 이분들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조금이라도 돕고자 관계 의원들에게 파독 관련자 지원법을 꺼내 보았지만 당시만 해도 거의 대부분 시큰둥하니 관심을 보이지 않아 제일 안타까웠습니다.

또 관심과 생각이 있어도 실제 법안으로 추진하기까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이 의원처럼 난관을 무릅쓰고 밀어붙일 줄 아는 기질과 성깔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완영 의원: 제가 이번 법안의 통과를 제일 먼저 (사)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 이우연 회장에게 전하면서 ‘57년 숙원을 57년생이 해내었습니다’라고 파안대소를 했습니다. 그만큼 이번 법제화 과정을 진행하면서 뜻 깊은 보람과 함께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파독 근로자의 박물관, 기념사업 등을 활발히 추진하는데 계속 함께 하겠다는 말씀을 이 자리를 빌려서 약속드립니다.

이제는 이번 법에서 미진한 부분은 연합회와 힘을 모아 법을 개정해 나가는 노력도 과제입니다. 21대 국회에서 의료지원, 생활 지원까지 보완하여 개정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재외동포들과 함께 희망을 갖고 대한민국과 교류, 협력하면서 조국의 발전은 물론 동포들이 해당국에서의 권익과 지위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혼신을 다 받치기로 했음을 밝힙니다.

이 이사장: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담 / 이구홍 본지 발행인
정리 / 박상영 편집위원

박상영 ok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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