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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자존심

기사승인 20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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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 매사추세츠 서부 한인회 회장]

이 단어만큼 단합과 화합을 이루어 내는 단어는 없다. 작금 대한민국이 처한 대 내외적인 현실이 그렇다. 지난 세기는 지식인이 대접받고 존경받는 시기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과정은 개도국을 거치면서 어느 나라든 겪어온 과정이다. 문맹률과 실업률, 그리고 그 사회가 처한 질과 양의 문제로 하여 늘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이 처한 현실은 우리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일련의 가역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초선진사회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국민 의식은 오래전에 진입되어 있었으나 사회나 국가는 늘 한 발 더디게 움직이는 까닭이라 생각된다.

   
 

SNS나 미디어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지식인의 독점 정보가 이미 사라지고 있다. 그동안 존경의 대상이었던 학벌과 내가 누구라는 인식이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서구사회는 오래전에 학벌이나 직함으로 존경받는 사회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들 먹고사는데 지장 없이 안락을 누리게 되면 직함으로 분류한 완장에 대한 향수는 사라지게 된다.

존경은 종이와 먹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언행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 혹은 일의 사안에 따라 복선에 복선이 깔리고 이중삼중으로 뒤집어쓴 가면으로 하여 그 정체성과 도덕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다. 이를 이용해 많은 이들은 식자의 논리로 그럴듯한 이론을 포장하여 명찰을 달았고, 실제 자기가 가진 가치 보다 더 부풀리거나 과대 포장되어 진열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 포장이 벗겨지고 광고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지난달 만난 노 학자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 분은 뛰어난 두뇌로 젊어서 석좌가 된 후 오랜 기간 자신의 분야에서 존경과 덕의 공력을 쌓은 분이다. 그런 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돌이켜 보니 내가 존경받은 게 아니었어. 존경은 서랍 속의 박사 학위가 받았고 나는 학위의 대리인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순간, 나는 짜릿한 전율이 머리를 따라 내리는 느낌이었다. 이 분에 대한 생각에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이를 알기까지 그는 비웠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의 유추와 이론의 근거를 묻고 또 되물었을 것이다. 시대를 읽어내는 통찰이란 이런 것이리라. 그랬다. 그들은 스스로를 포장하는 법을 배웠고 또 누가 시키지 않았으나 존경받는 이로 자부심을 가졌다. 이에 비해 상대는 자신의 신분에 대해 누가 강요하지 않았으나 움츠려 들었고 스스로 체념 하며 알아서 굴었다. 계급도 신분도 평등하다는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우리가 일본을 이야기할 때는 관계의 관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는 지난날 저들에게서 우리 민족이 겪은 천인공노할 반, 비, 인륜적 범죄의 만행이 적나라하게 흔적으로 깔려 있기에 그러하다. 36년의 핍박이 공기록으로 남겨진 것에 기인한 것이지만 미기록되거나 파기된 내용과 구술에 의하면 인류의 태생 이후 사람으로 태어나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죄를 다 지었다 한다. 이런 기록은 한국에만 남아 있는 게 아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인간의 도리나 논리로 그동안 한일관계에서 받은 댓가 등등으로 하여 비등하게 청산된 것이 아니냐 한다.

이들은 21세기 오늘에 나타난 자들이다. 이들은 친일로 받은 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제 신분을 수직 사회로 이동하기 위한 가설로 자신의 존재 부각을 위한 편협된 사고를 들어내고 있다. 이들이 매국하는 신 친일인이다. 그들은 일본의 장학금을 받고 성징한 이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사회는 사자에서 자자로 이미 이동하고 있다. 여기서 사자란(박사, 판사...)를 말하고 자란(기술자, 노동자...)를 말한다.

1917년 멜빈 존스가 만든 사교클럽 라이온스 모임에 가보면 회장이 일반 소 서민이다. 한국의 로터리 클럽처럼 무슨 회사 회장이나 한자리 한 분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주영 회장이 사자여서 큰 그룹을 경영한 것이 아니다. 그 아래 수많은 사자들(박석학)이 봉급을 받으며 일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수의 국민들만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자신의 처지나 신분을 자자(미천한 자)로 스스로 폄하하여 꿈조차 꾸지 않았던 대한민국이다. 사농공상이 사라진지 100년이 넘은 대한민국에서 프롤에 대한 잔재 의식이 남아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러듯 이제 대한민국은 자자들이 깨어나고 있다. 아니, 이미 깨어나 널리 퍼진 것을 이제 느끼는 것 뿐이다. 이를 인식하고 큰 판으로 바꾸는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누가 강제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억눌리는 일 그 헛 망상의 굴레를 벗어나는데 말이다.

역사란 일 개인의 생각이 아니다.

다수의 국민이 생각하고 국민 사이에 널리 회자된 사실을 국가가 정리하는 것이다. 이 것은 정권을 잡았다 하여 수정하거나 편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도된 것에는 공론을 거쳐 바로 잡는 것 또한 미래의 역사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사변주서 나 바른 정론이 필요한 이 시대를 정관하며 인포데믹이 난무하는 사회를 우려한다.

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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