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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엔 고짓센’ 연습하는 재일교포

기사승인 20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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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 도쿄 특파원

정권이 부추겨 온 反日에 “생사 걸렸다” 불안감 커져
민주당은 선거 다가오자 다시 ‘한·일戰’ 선동 나서

   
 

도쿄에서 알게 된 A씨. 재일교포 2세다. 일본에서 태어나 사업을 하며 60여 년을 살았다. 의심할 필요도 없이 일본어가 완벽하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한일 간 ‘총성 없는 전쟁’이 계속되자 이런 얘기를 한 게 머리에 박혔다. “양국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가면서 ‘주고엔 고짓센’을 발음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내 발음이 진짜 일본 사람 같은지 점검해 본다.”

일본 돈 15엔 50 전을 의미하는 주고엔 고짓센. 여기엔 일제 시대 한국인의 생사를 갈랐던 슬픈 역사가 담겨 있다. 1923년 10만명 이상 사망한 관동 대지진이 일어났다. 아비규환의 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살인하고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일본 군·경과 자경단이 광기(狂氣)를 번뜩이며 날뛰었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주고엔 고짓센을 말해 보라고 윽박질렀다. 어색한 일본어가 튀어나오면 현장에서 ‘즉결 처분’했다. 6000명 이상의 한국인에 대한 인종 학살이 역사에 기록돼 있다.

“설마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겠느냐”며 반문하자 그가 정색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 10년 후 나 같은 자이니치(재일교포)들은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도쿄의 회사에 근무 중인 재일교포 3세 여성 B씨. 일본인과 결혼해 초등학생 자녀가 있다. 한일 관련 좋은 뉴스를 듣기 어려운 요즘 아이들이 ‘한국계 엄마’ 때문에 차별받지 않을지 걱정한다. “잠시 있다 가는 사람들은 잘 모를 겁니다. 늘 머리 한쪽 구석에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심정을….”

2018년 징용 배상 판결에 이어 올 초 위안부 배상 결정으로 한일 관계가 나락을 향해 다시 추락하고 있다. 올해 중의원 선거를 앞둔 자민당은 보복 조치를 공개적으로 요구 중이다. 양국을 들끓게 했던 아베 정권의 수출 규제가 언제 발동됐던가. 2019년 7월 참의원 선거 20일 전에 전격 시행돼 혐한 분위기가 확산한 것을 기억하는 교포들이 많다.

기댈 곳이 없는 재일교포들은 조금씩 동요하고 있다. 100만 교포를 대표하는 민단(民團)의 중앙 본부 단장이 신년회에서 “최근의 상황은 재일교포의 생사(生死)가 걸린 문제”라고 한 것은 상징적이다. 민단은 지난해 지방 본부에 돌이 날아와 유리창이 깨졌던 사건에 대해 유사 사태를 우려해 쉬쉬하고 넘어갔다.

기자는 자신의 일본어 발음을 점검해보는 A씨의 불안이 기우(杞憂)라고 생각한다. 일본 사회가 거리낌 없이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던 야만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에서 일본을 과도하게 때리면 어김없이 일본에서 재일교포를 괴롭히는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오물덩어리 취급하며 반일 감정을 부추겨 온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재일교포의 불안지수는 매년 커져만 왔다.

그런 문 대통령이 신년 회견에서 “위안부 판결로 곤혹” “건설적, 미래 지향적인 관계 복원” 발언으로 기대감을 줬다. 하지만 불과 2주 만에 여당인 민주당이 다시 반일 감정을 들쑤시고 나섰다. 서울·부산 시장 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공약하자 “4·7 보궐선거도 한일전이 되려나” “친일 DNA 발동” 이라며 느닷없이 일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당 지도부까지 버젓이 방송에 나와 반일을 부추기는 것은 대통령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것 아닌가.

반일과 혐한이 동전의 양면처럼 움직인다는 사실을 안다면, 일본에 사는 동포들이 다시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이런 식의 저질(低質) 정치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일본에서 대통령 신년 회견 이후 생겼던 작은 기대는 빠르게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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