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民團 여건이(呂健二) 단장은 말한다 <Ⅰ>

기사승인 2019.04.24  

공유
default_news_ad1

지난 4월 11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한국의 저명한 논객 김동길 박사는 民團中央 단장과 2회에 걸쳐 民團의 당면 과제와 문제 등에 대하여 대담한 바가 있다. 본지는 여건이 단장의 대담을 중심으로 오늘날 民團이 직면한 고뇌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지난 4월 11일 여건이 민단중앙 단장이 김동길 박사와 대담을 하고 있다.

金東吉 :
안녕하십니까? 김동길입니다.
해외에 거주하시는 시청자분들께서도 미국, 남미, 일본, 유럽 등에 있는 여러 동포들이 조국의 운명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 이웃나라인 일본에서 사는 동포들은 더욱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일본의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일본사회에서 매우 큰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특별히 요코하마를 방문한 까닭 중 하나입니다. 이 기회에 일본사회에 사는 재일동포들, 그 중에서 숫자가 50만 명이 된다는 民團의 단장이신 여건이(呂健二) 선생을 모시고 일본의 동포들은 어떻게 살고 계신가, 고충은 없는 것인지, 괴로운 점은 없는지 얘기해 보려고 오늘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呂健二 :
안녕하십니까? 民團中央 단장 여건이입니다. 지금 김동길 박사님이 우리 재일동포 생활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데 대하여 대단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民團 조직은 1946년에 탄생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우리나라도 정부도 없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 부모님 세대는 참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 모두가 고향에 돌아가고는 싶은데 배도 없고 집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 시모노세키, 후쿠오카 등 항구도시에 모여 살면서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民團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民團이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해방 직후에는 약 200만 명이었던 재일동포가 그 후 60만 명만 남아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본국에서는 6.25전쟁이 터지다 보니 결국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지금까지 쭉 살아왔습니다.

1960~70년대 남과 북의 관계 악화로 일본에서 사는 재일동포들도 이념대립 시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조총련과 民團이 서로 죽자 살자 하는 위험한 시기도 있었고, 아주 심각한 분단 현상을 빚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 民團 단원은 약 45만 명입니다. 총련계는 약 3만 명입니다. 지난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전에는 총련계는 약 40만 명이었고 民團은 약 20만 명뿐이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역전했습니다.

국교정상화 이후에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법적지위는 재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국적 소지자는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됐습니다. 당시 조총련계 사람들을 ‘조선적(朝鮮籍)’이라고 했습니다.

1970년대 이전에 우리는 은행 거래도 안 되고, 취업조차도 어렵고 여러 가지 사회적 차별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배들이 일본 정부를 향한 많은 투쟁을 통해 지금은 법적차별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한일관계가 안 좋으면 일본에서 사는 우리도 불안해집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독도 방문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한 천황을 비방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헤이트 스피치’가 나타났고 “조센징 고로세(죽여버려라)” “나가라”고 구호를 외치는 혐한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잔존합니다. 지난 2016년 民團이 주도하여 ‘차별금지에 대한 법’을 제안했습니다. 일본 내의 외국인 단체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법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헤이트 스피치’ 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일본제일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합니다. 지금 지방선거철이긴 합니다만, 선거 때가 되면 후보자들이 앞다투어 차별에 대한 발언을 공공연하게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일본 정부와 계속 교섭했는데 드디어 지난 3월 8일 일본 법무성 인권옹호국을 통해 “SNS 상에서의 헤이트 스피치는 안된다”는 규정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 12일에는 법무성 조사구제과 보좌관 명의로 “선거 입후보자가 가두연설 등에서 헤이트 스피치를 할 경우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는 통지를 냈습니다. 우리 民團이 열심히 운동해온 성과가 보이는 대목입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님이 조용히 계셨으면 괜찮은데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바위에 새겨놓은 것이 일본 내에서는 커다란 반감을 샀던 것입니다.

이웃 나라들끼리 영토문제가 없는 나라가 없습니다. 일본 사람들도 감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땅”이라고 외치면 일본사람들도 “자기 땅”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피해는 현지에서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한테만 오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전 천황 비방 사건도 있었는데 천황은 일본인에게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폐일언하고 일본 공산당도 천황을 비방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역사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제징용 문제나, 위안부 문제를 놓고 보아도 일본인들은 우리와 판이한 생각을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과거사에 대하여 배우지 않습니다. 저도 일본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만, 졸업해서야 우리나라 역사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관한 교육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한테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 한두번은 “미안합니다”라고 사과로 넘어가지만, 계속해서 사과를 요구하면 “알았다, 마음대로 해.”라고 무시하고 넘어갑니다. 때문에 저는 교육의 차이가 바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때문에 정의는 정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지금 民團中央 단장으로서 우리 단원들의 생활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기도 합니다만, ‘한일우호친선’이 없으면 우리는 일본땅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지바에 있는 총영사관으로 협박 전화도 많이 걸려오고 민단 창문에 돌을 던지는 등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 民團입니다.

요즘 서울에서 국회의원이나 사회 운동하는 분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올 때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기분 좋지요? 매우 기분 좋지요?”라고 되묻습니다. 바다를 건너 안전지대에 있으면서 하고 싶은 대로 맘껏 다 하시지만 정작 피해를 보는 쪽은 재일동포인 우리들입니다. 때문에 사업도 그렇고 생활하기도 그렇고 우리 동포들이 일본에서 참 많은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 지난 4월 16일 서울에서 열린 오영석 재일민단동경본부 의장 취임 축하연에서 여건이 민단중앙 단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金東吉 :
단장께서 그동안 고충을 설명해 주시고 그 속이 얼마나 답답한가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실 한때는 조총련의 영향력이 매우 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한덕수와 같은 지도자가 북한의 유력한 인물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한덕수가 북한 체제의 세 번째 인물은 된다면서 김일성 정권이 재일동포들을 포섭하려고 오랜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45년에 조총련은 출발했지만 46년이 돼서야 박열이라는 열렬한 지도자가 민단을 창립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조총련이 우세하던 시기입니다. 우선 숫자로만 봐도 조총련이 민단에 비해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북에서 지원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남쪽에서는 아무런 지원도 못했습니다. 민단은 재정적, 행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조직이 형성돼 가며 오늘날까지 버텨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민단이 존속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기로에 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정부는 아무런 시책이 없습니다. 어떻게 이것을 끌고 나갈 것인지 문제입니다. 현재의 한국 지도자들은 일본에 대하여 모릅니다.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때문에 자기들의 판단만 하는 것입니다. 내용과는 거리가 먼 자기 판단들입니다.

1940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지금 80세 가까워집니다. 그래도 일제하에 초등학교 정도는 다녔어야 일본말이라도 몇 마디 들어봤지요. 하지만 지금은 전혀 모르는 세대가 우리 한국을 이끌고 나가는데 너무나도 모르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많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은 옆에서 충동질을 하면 따라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새로 생긴 문재인 정부는 역사에 대해 무지합니다. 이를 테면 여당지도자들이 민단에 와서 단장을 만나 부탁하기를 “삼일절을 민단과 조총련이 함께 축하하면 평화롭고 좋은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말은 좋지요. 그러나 민단과 조총련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아까 한국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가서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했는데 대통령이 왜 물러날 시점에 독도에는 왜 갑니까? 독도 문제도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입니다. 해방해서부터 “서로 건드리지 말자, 내버려 두자”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대통령으로 나와서 라인을 그으면서 “일본 배는 넘어오지마!”라며 이미 독도 근처 영토상의 합의점을 찾아 그것을 일본 사람들이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일제시대를 생각하고 우리가 민족의 고난을 많이 줬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나 해서 순종하는 의미에서도 미 군정이 있으니까 그것이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유리한 일이었습니다. 일본을 견제하는데 득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들, 조총련 동포는 얼마 되지도 않아요. 조총련이 작아진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고 한일국교정상화로 재일한국인 지위가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조총련이 공산당의 하는 짓을 본받아 나가기에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다음에 계속>

 

편집부

<저작권자 © 세계한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