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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디아스포라의 미래

기사승인 20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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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얼마전 독일에서 오랫동안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길을 함께 걸었던 한 선배의 영결식이 있었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 20대에 유학길을 떠났던 한 청년이 말년에 잔인한 병마와 싸우다가 이국땅에서 80세에 숨을 거두었다. 한 줌의 재로 변한 그와 영원히 작별하면서 외국땅에서 살면서도 두고 온 산하의 운명을 참으로 많이 걱정하고 번영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길을 찾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많은 얼굴들을 떠올렸다. 유럽의 윤이상과 이응노, 일본의 배동호, 김재화, 곽동의 그리고 미주의 임창영, 김성낙, 최홍희 등 국내에서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인사들도 있지만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애국지사들이 그동안 이국땅에서 눈을 감았던가.

   
 

일제의 억압과 수탈을 피해 살길을 찾아 남만주로 향했던 동포의 후손들은 해외동포 중 여전히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다. 스탈린시대에 연해주로부터 멀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도 많은 수난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에 사는 동포사회도 규모로는 중국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대부분 분단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 이뤄졌다. 일본의 동포사회는 식민지 모국이었던 일본이라는 조건 때문에 특이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규모로 보면 중국과 미국동포사회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규모와 구성에서는 차이가 있더라도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미주 등지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동포사회를 이제 지구촌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현재 750만명 정도로 구성된 해외동포사회의 규모는 해외에 사는 약 5000만명의 화교나 2400만명의 인도인과 비교하면 물론 작다. 그러나 한반도 안에 사는 동포의 10%가량을 차지하는 해외동포사회는 결코 작지 않은 한민족공동체의 한 부분이다.

1차 세계대전 전후로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인종청소’에 의해 150만명이나 살해되어 겨우 300만명이 자기 땅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의 경우에는 세계 곳곳에 현재 700만명이나 흩어져 살고 있다. 프랑스의 샹송가수 샤를 아즈나부르는 자기 민족의 이 슬픈 역사를 대표적으로 증언했다. 심지어는 조국도 없이 400만명이나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도 있다. 대대로 살았던 땅을 떠나 타 지역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면서 만든 새로운 공동체를 의미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규모가 크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들의 고통과 수난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디아스포라 하면 으레 유대인을 떠올리지만 인접한 강대국의 억압과 전횡 때문에 모국의 인구보다 더 큰 디아스포라를 해외에 형성한 아일랜드인이나 폴란드인도 있다. 독일의 여류작가 루이제 린저가 한국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던 한 동기도 아일랜드와 폴란드의 운명과 비슷한 역사를 한국에서도 발견한 데 있었다고 나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인 디아스포라는 이런 희생자들의 디아스포라라기보다는 현재 가장 큰 디아스포라를 형성하면서, 주로 상업활동을 통해 성공한 중국인의 디아스포라를 따라 화상(華商)의 ‘대나무 네트워크’(竹網)와 비슷한 한상(韓商)의 네트워크 결성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나는 뉴욕의 맨해튼과 플러싱에서 사업경험이 많았던 한 친구에게 그 가능성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화교들은 신용을 담보로 해서 서로 돕는데 우리 동포사회에서는 어떤 사업이 잘된다고 하면 서로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함께 망하는 경향이 있다고 자조 섞인 소리로 답했다. 식상할 정도로 익히 들어온 내용이었다.

내부적으로 갈등이 없는 디아스포라는 없겠지만 한인 디아스포라는 특히 분단된 조국의 정치적인 상황에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크고 작은 내부갈등을 낳았다. 미주동포사회에 있었던 안창호와 이승만 계열 간의 알력이나 재일동포사회에 있어서 민단과 조총련 간 갈등이 대표적인 예였다. 유신체제와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을 둘러싼 첨예해진 국내의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해외동포사회는 자유스러울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불러온 ‘촛불혁명’을 비판하는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로스앤젤레스나 프랑크푸르트에도 등장한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이렇게 국내정치적 상황과 민감하게 연동된 한인 디아스포라 내의 오래된 갈등도 그러나 세대가 바뀌면서 장기적으로는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포공항을 떠날 때 지녔던 생각이 일생을 간다는 말이 있듯이 몸만 외국에 와있지 생각과 행동거지는 그대로이고 향우회, 동창회, 교회, 한인회 등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는 지금 세대의 자리를 새로운 세대가 채울 때면 한인 디아스포라의 생활세계에도 많은 변화가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인 디아스포라는 내부적 분열과 갈등뿐 아니라 거주지역의 주민과 타민족의 디아스포라 간의 소통도 대체적으로 원활하지 못하다. 한인상가가 분노한 흑인들의 주된 공격대상이 된 1992년의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그러한 예의 하나다. 새로운 세대는 높은 교육수준, 직업의 다양화, 타민족과의 결혼 등을 통해 이전 세대보다 한층 더 열린 사고와 소통으로 한인 디아스포라가 지금까지 지니고 있는 폐쇄성을 극복할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성장했다.

인도 출신의 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는 현재 지구화과정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진행되는 이주와 이민은 지금껏 주로 민족국가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체성 대신 초국가적이거나 초문화적인 ‘디아스포라적인 흐름’을 만들고, 이는 새로운 차원의 집단적인 정체성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인이라는 유일한 정체성 대신에 한국인이자 동시에 미국인, 독일인 또는 중국인일 수도 있는 일종의 혼합된 정체성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인 디아스포라의 현주소를 생각한다면 이는 너무 나간 주장일 수도 있다. 민족국가의 정체성은 고사하고 분단국가 안 남북한 두 체제를 둘러싼 갈등이 아직도 여과없이, 때로는 오히려 증폭되면서 한인 디아스포라에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통일은 남쪽이 지향하는 동시성과 지구화와 북쪽이 추구했던 비동시성과 주체화가 상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남쪽이 강조해온 지구화와 북쪽이 강조해온 주체성은 상호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다. 따라서 지구화를 향한 강한 욕망과 자기정체성에 대한 확인을 결합할 수 있는 초문화적인 행위주체로서의 한인 디아스포라는 민족분단의 극복과정을 단축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그 규모는 작고, 시작도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조국분단에서 비롯된 증오와 갈등 때문에 외국땅에서도 시달렸고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평화스러운 통일조국을 기다리다 끝내 이국땅에서 숨을 거둔 애국지사들과 최근에 연이어 작별하면서 한인 디아스포라가 남과 북이 소통할 수 있는 창조적인 제3의 공간으로서 지구촌 곳곳에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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