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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 갈등’ 법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기사승인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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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 논설위원

외교부, 한일기업 재단 통한 해법 제시 /日 청구권협정 통한 분쟁 조정만 반복
법만 앞세워선 과거사 진정한 치유 난망

   
▲ '나고야 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회원들이 21일 오전 8시 30분부터 1시간가량 일본 외무성 청사 앞에서 미쓰비시 징용 소송 대리인인 이상갑 변호사(법무법인 공감 대표)와 이국언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일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촉구하는 제475차 금요집회를 열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정부가 8개월 만에 꺼낸 강제징용 해법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묘안은 아니었다. 전문가들이 비슷한 제안을 한 바 있고, 한때 일본 정부가 검토 가능하다고 알려진 시점에 청와대가 “발상 자체가 비상식적”이라며 찬물을 끼얹었던 것을 돌이켜보면 새삼스럽기도 하다. 일본 보도로는 정부 발표 이틀 전인 17일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직접 일본을 방문해 외무성 사무차관에게 이 해법을 제안했으나 면전에서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미 거부당한 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으니 “외교 당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국내 면피용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제안 내용도 비판받을 여지가 없지 않다. 외교부는 재단을 통한 위자료 지급을 일본이 받아들일 경우 일본 정부가 줄기차게 요구하는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 조정에 응하겠다며 ‘1항’ 협의 절차 수용 검토 의사를 밝혔다. 청구권협정은 3조에서 3단계 분쟁 해결 절차를 명시하고 있다. 1항에서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도록 했다.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각 체약국 정부가 임명하는 1인의 중재위원’과 그 두 사람이 직접 지정하거나 또는 그들이 지명한 제3국 정부가 지명한 제3의 중재위원이 함께 3인 중재위원회를 꾸려 해법을 정한다. 이도 안 되면 양국 정부가 각각 지명하는 다른 국가의 정부 등 제3국들이 역시 3인의 중재위원을 구성해 문제를 다루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올해 초 이 절차에 따른 외교적 해결을 시도했으나 우리 정부가 응하지 않자 두 번째 단계인 중재위 구성을 통고했고, 이마저 사실상 묵묵부답이자 18일 마지막 절차인 제3국을 통한 중재 의사를 표명했다. 이만큼 시간이 흐른 마당에 6개월 전의 외교적 해결 수용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했으니 일본 쪽에서 질렸다는 반응을 보일 만도 하다.

징용 피해자들이 만족스럽지 못하게 여길 대목도 한두 곳이 아니다. 이미 피해자 단체가 성명 등을 통해 밝힌 대로 위자료 지급 대상을 ‘확정 판결 피해자’로 한정했다거나 일본의 ‘역사적 사실 인정’과 ‘사과’를 전제로 하지 않은 점 등은 문제다. 지난 정부의 성급한 위안부 합의에서 교훈을 얻을 만한데도 피해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것 역시 질책받아 마땅하다.

외교부의 이번 해법은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한편으론 맞춤형 정답을 제시했다기보다 해법을 함께 가다듬어 보자는 제안으로 볼 여지도 없지 않다. 한일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조성될 재단을 정부가 청사진까지 그려서 가지고 있어야 될 일일까. 위자료 지급 대상이나 과거사에 대한 공식 사과는 재단 설립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될 부분은 아닐까. 일본을 향한 외교적 해결 수용 의사 표시는 포괄적으로 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 조정에 응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는 없는가.

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 조정은 공평무사해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결론을 예단할 수 없기 때문에 한일 모두 사법부의 판단이나 국민 여론과 배치될 정치적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사 문제를 피해자나 국민 감정 치유 노력 없이 중재에만 맡겨 풀었을 때 그게 과연 진정한 해결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 김범수 논설위원

갈등 해결은 어느 경우든 ‘법대로만’은 충분하지 않다. 한일 위안부 합의 경험에서 보듯 국민 감정이 얽힌 과거사 문제는 더더욱 그렇다. 압류된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 미쓰비시중공업 등의 자산 매각 절차가 이르면 8월 안에 시작될 수 있다고 한다. 그 이후를 예단하기 어렵지만 일본 정부의 반발 조치 등으로 한일 관계가 지금보다 더 얼어붙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서로 양보하고 절충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감할 때까지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의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대화를 시작했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번 우리 외교부 제안과 얼마나 다를지 의문이다. 일본 정부가 ‘국제법 위반 시정’에만 매달리지 말고 과거사 치유라는 더 큰 시야를 갖기를 기대한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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