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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 확 바뀐다

기사승인 20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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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안 / 기자

고려인마을, 국내 두번째로 큰 주거지
주민에 고려인, 외국인까지 3만여명
올해부터 2023년까지 도시재생사업
마을 목표 "세 부류, 어울려 잘 살게"
상생플랫폼·쉐어하우스·역사관 만들어
국제거리 조성, 매년 각국 축제도 개최

   
▲ 광주에 자리잡은 고려인마을은 이제 고려인과 외국인, 주민이 함께 사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이곳을 함께 어울려 사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재생사업이 올부터 2023년까지 추진된다. /권경안 기자

“함께 모여 잘 살아야죠.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래요.”

   
▲ 권경안 기자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2동은 ‘고려인마을’로 불리는 주택가이다. 알아볼 수 없는 러시아말과 우리말이 함께 쓰여진 간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일, 채소, 빵 등을 파는 업소들도 있고, 카페들도 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조국(祖國)의 품을 찾아온 고려인들을 비롯 베트남 등 동·서남아시아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외국인들까지 다양하게 이 거리를 오가고 있다. 이들이 고려인마을에 둥지를 틀고 있다.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이곳에서 모여살기 시작했던 고려인들은 20년 세월이 흐른 지금 7000명을 넘어섰다. 제일 먼저 정착한 신조야(65)씨는 “고려인들이 다른 외국인들과 도 함께 어울리면서 사는 동네로 만들기 위해서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 3세이다. 이곳에서 결혼, 한국인 국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고려인들이 모여 살면서 이 마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고려인 네트워크가 작동하면서 광주를 정착지로 여기고 입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국내에서도 타지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는 경우도 많다. 경기도 안산에 형성된 고려인마을에 이어 두번째로 큰 고려인 거주지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타이, 네팔 등 동·서남아시아에서 온 이들도 급격히 늘어 6000명선을 헤아리고 있다.

이처럼 고려인마을은 고려인과 동·서남아시아들이 함께 사는 외국인촌으로 변모하고 있다. 바로 인근에 하남공단과 소촌공단이 있고, 광주외곽 농촌과 나주 등 전남지역 농촌지대와 접하고 있다. 가까운 공단과 농촌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 나름대로 주거지 장점을 갖고 있다. 월곡동은 전형적인 주택가로 고려인과 외국인은 주로 방을 임대하여 살고 있다. 하남공단이 조성될 때 그곳에 살았던 주민들을 위해 1980년대 만들어진 이주단지가 바로 월곡동이다. 그러므로 주민, 고려인, 외국인이라는 성격이 다른 세 부류 3만여명이 함께 살고 있다. ‘다문화집합지’라는 독특한 주택가이다.

이곳이 앞으로 확 바뀐다.

국토부가 주관하는 도시재생뉴딜사업지로 확정돼 개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올부터 국비(150억)와 지방비(50억) 등 사업비 200억을 투입, 오는 2023년까지 이 사업을 추진한다.

월곡2동 도로변 작은 건물 2층에는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센터는 관(광산구청)과 민이 함께 일하는 지원조직이다. 그곳에서 만난 박용수 센터장은 “일반적인 도시재생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인마을로 불리지만 다양한 외국인들이 함께 살고 있다”며 “이런 특성을 감안, 함께 어울려 사는 곳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인마을 공동체를 지원하는 고려인동행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해오고 있는 전직 언론인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 그는 이천영 목사와 함께 주민들을 만나 재생사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이 목사는 신조야씨와 고려인마을 공동체를 이끌어오고 있다. 이 목사는 고려인과 외국인 자녀들을 광주시교육청으로부터 위탁받아 중·고교 과정을 가르치는 새날학교(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재생사업은 ‘상생(相生)’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려인과 외국인, 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취업과 창업, 복지입니다.” 이를 위한 공간과 조직을 만들려고 한다고 박 센터장은 말했다. 고려인이 아닌 외국인은 지금까지12개 국적으로 파악되고 있다. 각국 모임체에 공간을 제공하여 구심체로 삼도록 하고, 각각의 문화와 예술을 서로 나누도록 가꿔나갈 계획이다. 박 센터장은 “서로 다른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류와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려인은 물론이고 각국 사람들은 나름의 조직을 유지해오고 있다고 했다. 고려인들은 일찍부터 진료소, 법률상담소, 라디오방송, 역사자료실 등을 갖추며 공동체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 같은 활동이 가능하도록 상생플랫폼을 위한 위한 건물을 지을 예정이다.

올해는 주민들을 이 사업에 적극 참여토록 도시재생을 주제로 함께 공부하는 시간(도시재생대학)을 갖기로 했다. 이미 주민대표들을 포함한 도시재생추진위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고려인뿐 아니라 주민들도 협동조합을 만들어 활로를 찾는 일을 시작했다. 고려인, 외국인들이 처음 왔을 때 마주치는 문제는 주거문제가 크다. 일시적으로 숙식문제를 해결하면서 정착을 모색하는 완충기가 절실한 실정이다. 이를 위해 주택을 사들여 여러 곳에 ‘쉐어하우스’로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고려인들과 외국인들의 문화가 살아 있는 국제거리도 만들기로 했다. 여러나라의 음식과 예술이 숨쉬는 거리이다.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를 잇기 위해 역사자료센터도 마련키로 했다. 현재 고려인마을에는 중앙아시아에서의 고려인 역사를 알게 해주는 역사문화·생활자료가 2만점에 이르고 있다. 광주출신으로 카자흐스탄으로 가서 한글교사와 현지 고려신문기자 등으로 20년 이상 활동한 김병학씨가 귀국하면서 가지고 들어온 자료들이 주축이다. 일부는 지난 1월 국가지정기록물(제13호)로 등재되었다. 매년 9월 다국적 문화제도 열 예정. 고려인들의 경우 해마다 추석 무렵 축제를 열 정도로 경험을 쌓아왔다.

김삼호 광산구청장은 “단순한 도시재생이 목적이 아니다”며 “도시속 다양한 구성원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상생협력하는 도시재생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도시의 팽창에 따라 원도심이 쇠락한 경우가 많아 재생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이곳 고려인마을은 주민, 고려인, 외국인이 혼거하는 특성 있는 주택지이다. 이 같은 특성을 살려 ‘함께 어울려 사는 동네’로 가꿔갈지 주목된다.

고려인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재외교포들이다. 러시아 연해주에 이주해 살던 조선인들은 1937년 당시 스탈린의 이주명령에 따라 17만여 명이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강제이주당했다. 연해주로부터 기차로 6000㎞ 이상 떨어진 곳이었다. 뿌리를 뽑힌 디아스포라(이산인·離散人)로 힘겹게 살아왔다. 고려인 3~4세들이 국내 정착을 시도하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 각국들이 고려인을 배척하는 분위기를 형성하자, 현지 고려인들은 러시아 연해주와 국내로의 재(再)이주를 통해 살 길을 찾고 있다. 국내에선 고려인들이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가운데, 대표적으로 경기 안산과 광주(光州)에서 모여살고 있다.

   
▲ 광주에 형성된 고려인마을에는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가 들어서 이들의 정착을 돕고 있다. /권경안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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